저는 결혼 전까지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을 받아 교직생활 2년차에 앞 자리에 앉았던 남자 동료 교사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교회는 다녔지만 그저 남편 따라 다니는 교회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결혼하기 전 남편은 저 아닌 다른 자매로부터 매주 한통씩 편지를 받고 있었는데 그 편지를 보내던 자매는 아는 목사님의

소개로 만나 남편이 결혼까지 생각했던 자매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 자매와 결혼 했더라면 남편의 결혼생활이 훨씬 더 평탄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저를 위해 뭐든지 해 주는 사람인데 제 마음이 불편하거나 힘들면 저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심통을

부리곤 했거든요.


  그렇게 저는 제 안에 정말 주님이 살아 계신가 하는 의문이 있으면서 남들 보기에 믿음 좋은 사람처럼 그렇게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 마음에 제대로 말씀을 보고 싶다는 갈급함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흐르고 2008년 2월에 저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후로 지금까지 약물에 의존해 호르몬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4년 후 2012년 2월에는 유방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저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계셨는데 저는 믿음도 없고 눈치도 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않고 미련하게 살았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가정에서 항상 피해자라는 생각과 내가 너무 불쌍하다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에 대한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한심하고 답답하게 생각하셨던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병인 암이 재발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병력이 화려한 관계로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는데 2015. 2월 종합 정기검진에서 가슴에 크기는 작지만 혹이 자라고

있으니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셔서 바로 조직 검사 실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휴대폰에

 ‘조직검사 병리추가검사’ 라는 메시지를 받게되었고 남편에게 얘기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과를 보러가는 날

아침에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암으로 판정되었고 수술을 위한 MRI 촬영을 하였는데 초음파상 1.1cm였던 것이 MRI에서는 거의 배의 크기로

보이면서 그 옆에 작은 것이 또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또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 모든 것 위에 저를 위한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최종결과가 나오기 4일전인 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에 입학을 시키신 것입니다.

만약 학교입학 하기 전에 최종결과가 나왔다면 아마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학교입학 후 최종결과가 나오고 병원에서 각 검사실로 검사를 받으러 다니는데 갑자기 ‘전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그 전쟁은 내게 속해 있으니 내가 하는거야.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그것이

주님의 음성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저를 피난처 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에 머무르게

하셨고 교회 안에 중보기도 가족들을 주셨습니다. 수술전날 교회의 가까운 지체들과 분당야간학교 간사님들과

형제자매님들로부터 함께 기도하겠노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데 저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저를 보시며 답답해 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고 계셨다는 확신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에

또다시 평안이 왔습니다.


  수술전날 코디네이터의 수술과정에 대한 설명과 MRI결과에서 본 암 덩어리는 100% 임파선 전이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만약 전이가 되었더라도 ‘하나님께서 전쟁을 선포하시면서 그 전쟁은 내가 하노라’ 말씀 하셨던 것이

생각나면서 수술전날 밤에도 편안히 잘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술전날에 기도하기를 그 주간에 있는 “아버지 사랑” 강의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수술결과는 임파선 전이가 되지 않았고 다음날 퇴원하여 이동선선교사님의

 “아버지 사랑”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퇴원할 때 병원에서 진통제 일주일 분을 처방하여 주었는데 저는 그 진통제를

한 알도 먹지 않았고 큰 통증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며 상처는 잘 아물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독수리 형제자매님들과 간사님들의 기도와 저를 위해 중보한 지체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 4/17일부터 시작된 항암치료와 함께 애찬식과  전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분당야간학교 전라팀으로 첫 도착지인 여수를 향해 떠나던 날 우리는 사람과 짐이 서로 뒤엉켜 출발했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라는 기대만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첫날 우리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시내사역을 마치고 첫 번째 교회에 대한 음성듣기를 하고 나섰지만 교회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열흘을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형제자매 중 누구하나 불평이나 짜증부리는 이가 없었고 보이지 않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아버지께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자로 돌아가 찬양과 예배의 시간을 갖고 자신들의

잘못을 내려놓고 눈물로 회개 하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날은 그렇게 여수엑스포 공원에서 더위, 모기와 싸우며

노숙을 했지만 결코 힘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 시간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하더라구요. 항암치료 중인 저로 인해 우리팀의 노숙이

본부에까지 보고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간사님들의 ‘쎄다판 기도’로 아무런 문제없이 전도여행 첫날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날의 노숙을 마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품안에 안아주시고 위로하시면서 열흘간의 행복한 전도여행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6차까지 항암치료가 마쳐졌고 32회의 방사선치료를 11/3일인 지난 화요일 까지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료식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무지하고 믿음 없었음을 회개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 숨결보다

더 가까이에서 저를 완벽하게 아시는 그분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제가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은 힘들거나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저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주목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용사들을 붙여주시고 돕는 자들을 보내주셔서 제가 완전하게 치료될 수 있도록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보고 있기 때문에

흘리는 감사의 눈물입니다.


  저를 통해 기적을 행하신 주님 저는 저에게 왔던 그 아픔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끈질기신 분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지금도 저를 새롭게 빚으시면서 계속하여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그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나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