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녀의 둘째 딸로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버지와 야무지고 통찰력은 있으나 자상한 애정표현을 할 줄 모르는 어머니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중/고등학교까지 교회는 가 본적이 없었고 유교적 분위기가 좀 강한 엄격한 가정에서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시간이나 기회들이 별로 없이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 엄마의 마음을 살피고 집안일도 도우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적인 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사춘기가 오면서 공부도 집중되지 않고 살이 쪄 가는 내 모습이 너무 싫어질 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그래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잘 될 수가 없어~’ 이런 낮은 자존감이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를 스스로 괴롭혔습니다. 대학 진학 후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쯤 ESF 선교단체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들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이 참 좋아 1:1 말씀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졸업수련회 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일평생 하나님을 떠난 자로 살지 않겠다.’ 또 ‘사람 앞에 숨기지 않겠다’ 고 선포하였습니다.

   수련회 직후 부모님과의 종교적 충돌로 매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고 종교에 미쳤다는 소리 등으로 내 인생의 가장 암담한 시기를 맞닥 뜨렸습니다. 빨리 결혼해서 집을 떠나라는 강요에 많은 선 자리에 불려 다녔지만 신앙 있는 남자와 결혼해 함께 하나님을 믿고 교회 나가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 서로 연약한 신앙이었으나(로마서8:28) 말씀을 붙들고 결혼하여 울산에서 신혼과 교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구역장 집사를 통해 기도생활의 깊이를 알아가며 새벽제단을 쌓고 낮에는 소그룹 기도모임으로 기도 응답의 즐거움을 경험하자 영적세계의 크고 깊음을 더욱 알기를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활 하던 중 남편의 본사 발령으로 12년간의 울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 올 때 주님이 가라 할 때 움직이고 멈추라 할 때 멈추는 신앙으로 오직 하나님께 시선 맞춘 자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의 사춘기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고 부모의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 아이와의 끊이지 않는 갈등이 7년을 넘어서자 나는 자녀양육에 패배자요. 실패자라는 생각이 어느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아이들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고무풍선 터지듯 터져버려 폭언과 매를 들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어 지쳐갈 때 포기하고 싶을 때 교회 집사님의 소개로 BEDTS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 이미 교회생활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아는데 뭘 또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 만만찮은 등록금을 남편 눈치 보며 애기해야하는 불편함, 나는 이미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데 하는 교만한 마음들이 등록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3월 첫 강의 때부터 성령께서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데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상처들을 보고 발견하게 하셨고 눈이 짖무르도록 눈물을 쏟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강의를 들을 때 ‘생일‘ 이라는 단어에 눈물이 터져 하루 종일 멈춰지지 않아 이성적으로 어리둥절하며 이해되지 않아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왜 입니까? 눈물이 나올 상황이 아닌데 주책맞은 사람처럼 계속 울고 있으니 이거 무슨 상황입니까?” 과거의 그냥 스치고 지나갔던 여러 기억들과 친정어머니의 하소연들이 떠오르며 아버지의 외도와 사랑을 받지 못한 결혼생활, 아들을 바랐지만 연이은 딸들의 출생.. 그 중 둘째 딸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기뻐하지도 축복받지도 못한 출생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사랑받으려 했었고 아이들이 내 사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않자 자라오며 쌓아왔던 거짓 메세지들이 나를 공격하고 아이들을 공격하는 화살이 되었으며 그 벽이 자기연민과 분노의 감정으로 스스로가 통제되지 않는 높은 담으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내게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기를 원하시며 나의 연약함과 상처와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께 나갈 때 한없는 풍요와 사랑으로 자유함으로 이끄시고 따뜻하게 안아 주시는 너무도 좋으신 내 아버지임을 더 크게 더 깊이 알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터키 전도여행 때 나를 예배자로 부르셨으며 눈에 보이는 세상이 어떠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치관을 사랑을 전하고 흘려보내야 할 분명한 사명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BEDTS는 내 나이 마흔 여덟이라는 숫자가 정말 숫자에 지나지 않으며 엘리야 시대의 숨어있던 기도 용사처럼 내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와 세상의 모든 영역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자로 지금부터 더욱 연습되어지고 훈련되어져야 할 때임을 깨닫게 한 영적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이 주신 비타민 알약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지쳐있는 이웃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해서 성공해야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패한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우리 입술의 고백을 기뻐 받으시는 분임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 둘째 아들의 사춘기로 큰 아들 때와 같은 홍역을 치루고 있지만 더 여유 있고 넉넉한 나를  스스로 느끼며 도가니와 풀무와 칭찬으로 나를 다듬으셔서 더욱 단련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