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눈뜨다.

2016.08.19 12:55

관리자 조회 수:871

오늘날 사탄이 나에게 구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면,
나는 그에게 구세주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는 상처를 보여 줄 것이다(사 49:16).
나의 장한 결심을 기념하는 센티멘털한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 나무를 보여 주고 사탄을 꾸짖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내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물으면,
농담반 진담반 으로 "2000년 전에요"라고 대답하겠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선행 이나 악행을 하기 전부터 나를 아시고
내 구원을 예정하신 그분 때문에, 그리고 세상의 제단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때문에 나는 구원받은 날짜를 새기고 표시할 필요가 없다.
내가 믿는 그 분이 누구인지만 알면 된다.
그분이 나를 영생으로 이끄실 것을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
내 열두 살 시절이 여섯 살 시절보다 조금 더 구원을 받은 게 아니다.
다만 복음에 대한 이해력이 여섯 살 때에는 여섯 살 아이 의 수준이었고,
열두살 때에는 열두살 아이의 수준이었을 뿐이 다 지금은 서른다섯 살의 수준이 되었지만
전지전능하신 예수님 은 여전히 나와 동행하고 가르치신다.
그분은 우직하리만치 신실하신 분이다. 굉장히 신실하셔서,
내 추악한 죄가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복음의 빛을 비춰 주셨다.
예전 같았으면 그 빛은 그토록 밝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완전한 암흑 속에 걸어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빛은 언제나 나를 비추고 있었다.
마침내 때가 이르러 내 영혼에 죽음처럼 캄캄한 밤이 시작 되자,
그 빛은 나를 구세주의 은혜와 능력 속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그때가 바로 내가 복음에 눈을 뜬 순간이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를 포함해서) 번개처럼 한 순간에 번쩍하고
복음에 눈을 뜨는 게 아니라 서서히 눈을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과 상관없이 복음을 더 깊이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성령에 의한 성화의 역사이자
복음의 참맛을 느끼는 순간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 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정말로 은혜 위에 은혜이고 계시 위에 계시이며 축복 위에 축복이다.
영적인 도약 이 순간적으로 일어날 때, 그 겹겹의 은혜는 어두운 극장에서
대낮의 환한 거리로 걸어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영적인 도약이 서서히 일어나는 경우는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비슷하다.
모두 다 빛의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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